이번 주는 이상하게도 업무하면서 자잘한 실수들이 너무 많았다.

 

비슷한 이름의 두 원자재를 헷갈려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걸 문제가 없다고 메일을 썼고, 원가 계산하는데 세부사항 정리비교에서 실수를 했고, 회의록을 보내는데 가장 중요한 테크 리드를 빼고 메일을 보냈다. 테크팀 매니저가 그걸 발견하고 전체 회신으로 정정한 걸 보고 알았다.

 

물론 아니 어떤 정신머리로 일을 하길래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지? 싶은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었지만, 이번 주 처럼 일주일 내내 사소한 실수를 한 건 정말 오래간 만이다. 최근 일이 많아지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늘어난 건 인지하고 있었는데, 견고하게 쌓았다고 생각했던 탑에 구멍이 숭숭난 걸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심기가 불편했다.

 

 

 

평소에 적당히 어지르고 살고, 식습관이 까다롭지도, 성격이 예민한 편도 아닌데 (남편은 내가 덜렁거린다고 맨날 혼낸다) 일에 있어서는 사람이 180도 변한다. 완벽주의자....라고 할 순 없고 완벽주의 '지향자' 정도라고는 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월급쟁이 신분으로 이런 성격은 장점이 많다.

일을 볼 때 우선도를 파악해서 순서에 맞게 계획을 세우거나, 해야할 일은 완전히 클로징 될 때 까지 물고 늘어진다. 중요한 문서들은 확실히 마크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도 명명백백 확실하게 하니 수퍼바이저도 딱히 내 업무에 손을 대지 않는 편이다.

 

 

 

 

 

다만, 내가 내 자신을 너무 괴롭힐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데, 굳이 풀어보자면 이렇다. 내가 생각하는, 남이 볼 때 비춰져야하는 내 모습이 완전한 이상향으로 그려져 있다. 다행히 나는 그걸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지 잘 알고 있다. 동료들과 나의 상사가 이 이상향에 속아넘어가도록 혼신의 노력을 하다보니, 어찌저찌 8할은 나 자신도 깜빡 속아넘길 정도로 성공적이다.

 

그러나 나머지 2할의 부족한 내가 예고없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가끔 최종 리뷰를 하지 않았거나, 일이 많은 날 급하게 작업하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한다.

그걸 발견한 순간 이 실수가 영원히 아카이브 되면서 자책과 일종의 자기혐오가 시작되는데, 일 다 끝나고 저녁밥을 먹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그게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떠올라서 그 때마다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 매커니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억들이 혼자 불쑥 튀어나오는 게 아니었다. 머리 깊은 곳에 좋지 않은 기억들을 정리해서 넣어둔 서랍이 있다. 갑자기 또 다른 내가 나타나선 거칠게 서랍을 열어젖힌 후 그 기억들을 마구 끄집어낸 뒤 마음대로 던져버린다. 이후 엉망이 된 서랍 주위를 보고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정작 이성적인 나는 이런 걸 바란적이 없는데도 또 다른 나는 이 짓을 반복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자기학대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심해지면 번아웃 증상 비슷하게, 무기력증이 찾아온 적도 많았다.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지는 게 도움이 될까? 너그러워진다는 핑계로 게을러지면 어떡하지? 하루이틀만 생산적인 걸 하지 않아도 뒤쳐질 것 같은 조바심이 난다. 모든 것이 여유롭게 흘러가는 유럽에 10년을 살아도 이 K노예정신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것보다도 조금만 느슨해져도 머리보다 몸이 뒤틀리는데 균형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일 생각을 조금 덜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해 봐야겠다. 홈베이킹, 독일어 공부, 또 아침에 일어나면 차를 한잔 마시며 블로그 포스팅을 반 페이지라도 써볼 계획이다. 다른 방향의 생산적인 일을 하되, 나를 위한 시간과 취미활동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사실 일에 내 전부를 내던지지 않는다라는 생각에서부터 벌써 알 수 없는 죄책감? 부담감?이 밀려오지만, 이러다가 번아웃이라도 와서 뻗어버리면 더 곤란해 질 것 같다. 그만큼 내가 일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인것도 같다.

 

 

 

더 효과적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위해선 가끔은 속도를 늦춰 멘탈을 정비하고 잘 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