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급증하는 검색어를 꼽으면 다이어트, 이직, 자격증 공부, 해외여행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아마도 새해 다이어리나 일기장일 것이다. 누구는 일간으로 매일 있었던 일이나 감사한 일 등을 정리하는 걸 좋아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구는 주/월간으로 크게 계획을 세우는 걸 선호하기도 한다.
학생 때부터 펜이나 샤프 등 문구류를 좋아했고, 그걸로 늘상 뭔갈 끄적이곤 했다. 감수성 풍부한 청소년이, 학교에 갇힌 채 가질 수 있던 작은 분출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시험 일정, 공부 다짐, 목표 성적, 가고싶은 대학교 등 매일의 기록이 쌓이면서 빼곡히 채워지는 다이어리 속지 한 장 한 장을 보면 괜히 열심히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얀 종이를 수도 없이 넘겨 시커멓게 손때가 묻고, 꾹꾹 눌러쓴 글자들이 모이면 노트가 마치 발효된 반죽처럼 퐁신하게 부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건 일종의 트로피와 같은 상징이다.
사회로 내던져진 후 일을 시작했을 때에도 이 습관은 긍정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다년간의 내 사회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스케줄러를 잘 쓰는 사람이 반드시 일잘러는 아니지만, 일잘러들은 굳이 손으로 작성하는 노트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정을 관리하는 강력한 툴이 있다고 장담한다. 내 시간들도 반복되는 매일은 테트리스 놓듯 짜놓은 계획을 따라 순조롭게 흘러갔고, 업무 성과도 늘 좋았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일하느라 온 힘을 쏟고 퇴근하고 나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진짜 내 생각을 정리할 기력이 없는 것이다. 몇 차례 침대 옆에 두고 쓸 노트를 비치해 둔 적도 있었지만, 베개에 머리만 대면 기절해 버리는 날들의 연속이니 허무하게도 몇 번 쓰지 못하고 그 해가 지나가버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또 하나는 마치 내가 작가라도 된 양 그럴듯한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이었다. 이건 전적으로 완벽주의적인 내 성격의 문제다. 일단 뭐 하나 하려면 완벽하게..는 못 해도 그럴 듯 하게는 해 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이 시도때도 없이 불쑥불쑥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다. 일기로 책을 엮어 남들 보라고 출판할 것도 아닌데, 볼펜과 종이로는 도저히 썼다 지웠다하거나 단어와 구성을 바꿀 수 없으니 에라이, 하곤 지레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또, 2023년에 산 예쁜 새가 그려진 스케줄러는 반도 쓰지 못하고 방치되고 말았다. 노트를 자꾸 사오는 건 분명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인데, 왜 매일 조용히 앉아 몇 자 적는게 그리도 어려운 걸까.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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