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겨울이 물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해도 잘 뜨지 않는 폴란드의 흐린 겨울은 지겨울 정도로 길었다.
대낮이 되면 10도가 넘는 따뜻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집 뒤에 있는 숲에도 푸른 잎들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가 있었지.
 

바로 홈 가드닝!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결정한 배후에는 전염병 사태가 있었다.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바깥 출입도 자유롭지가 못하다보니 반 감금생활을 해야했었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되돌아보아도 정말 너무 힘든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매 시간 매일 붙어있다보니 남편과도 사소한 걸로 얼마나 많이 싸웠던지.
 
그렇게 이사를 한 23년 봄에는 잔디도 사다 심고 화단도 만들며 이것 저것 서투르게나마 해 보았다. 화단 하나에 흙이 엄청나게 들어간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이런 흙도 영양분이 풍부한 것으로 사다 부어야하는 점을 감안해서, 오로지 가성비만 따지자면 마트에서 사다먹는게 훨씬 싸다.
거기다 이런 걸 해본 경험이 전무하다보니 주키니 호박잎은 멋대로 웃자라고, 잎을 쓰는 민트나 딜도 꽃만 잔뜩 피어버렸다. 토마토나 콩도 조금은 수확했으나 한 명 먹을 분도 나오지 않았으니 요약하자면 초보 농사꾼의 대패였다.
 
 
 
그렇게 패배를 인정하고, 이를 갈며 24년 봄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올해는 제대로 해보리라 다짐하며 한국 갔을 때 다이소에 들러 폴란드에선 구할 수 없는 채소씨도 미리 사왔다. 그 결과가 바로 아래. 
 

2/17 흙을 담고, 발아를 시작했다.

 

각 줄 당 뿌려둔 씨 이름을 써놨다. 카옌고추, 쑥갓, 시금치와 쪽파.

 
 
하바네로 씨앗을 필두로 19일에는 한국 부추, 23일에 쑥갓, 한국 파, 깻잎을 비롯 현지에서 구매한 카옌 페퍼, 세라노 칠리, 시금치, 파프리카도 심었다. 흙도 씨앗 발아에 적합한 것으로 골랐다. 이 배양토가 담긴 작은 화분들 밑에는 물받이 트레이가 있는데 거기다 물을 주면 뿌리가 물을 찾아 더 잘 뻗어나온다고 한다. 여기 더해 따뜻한 주방 한켠을 내주고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햇빛이 잘 들도록 관리해 주었다.
 
 
 
몇 일을 물을 줬는데도 별 기약이 없다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나와보니 오잉! 부추가 고개를 들었다. 역시 유럽 씨에 비해 발아도 빠른 K-스피드다.

부추씨 : 거 빨리빨리 좀 합시다!

 

 

부추를 4일이나 먼저 심었는데 그 다음으로는 후발주자인 쑥갓이 발아했다. 그렇게 치면 쑥갓이 부추보단 새싹을 틔우는 속도가 훨씬 빠른 셈이다. 쑥갓은 오뎅탕이나 우동에 곁들여먹는 정도로만 알고있는데, 이렇게 잘 자라주니 이걸 어떻게 요리해먹을 수 있는지 한번 검색해 봐야겠다. 이제 겨우 싹 텄는데 뜯어먹을 생각부터 한다.

쑥갓 씨앗. 지금은 더 자랐는데 잠깐 안보면 더 자라있다.

 

여기 작은 트레이에서 약 5cm 정도까지 키워 조금 더 큰 화분으로 옮겨줘야 한단다. 그래서 지름 20cm짜리 화분도 20개나 사놨다. 거기서 어느정도 자란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면 야외 화분으로 내보내면 된다. 그때는 햇빛이랑 빗물도 마음껏 먹고 쑥쑥 크겠지. 생각만 해도 신난다.

 

 

 

완연한 봄이 되면 추가로 세 네 가지 토마토 모종도 사보려 한다.

토마토는 햇빛을 아주 좋아하고 뿌리도 다소 공격적으로 내리기 때문에, 모종은 딱 하나씩 자기만의 그로잉 백에 심는 걸 추천한다고 한다.

앞으로 종종 이 녀석들의 소식을 올려보도록 하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