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잘 아는 사람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 있다. 바로 '은둔자'다.
얼핏 들으면 부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새파랗고 어리석었던 시간을 지나 30대 중반에 접어 들면서 직간접적으로 깨닫게 된 세월의 지혜이기에 개인적으론 이 별명을 참 좋아한다. 왜 나는 은둔자가 되고나서 예전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단 하나의 SNS도 없는 사람
기본적인 성격 자체가 불특정다수 앞에서 나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꾸 눈에 띄면 원하지 않는 말이 나는 법, 거기서 느끼는 피로도에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라고 해도 좋겠다. 비슷한 맥락으로 오래 전에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본 적도 있었지만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인스타그램 같은 건 보지도 하지도 않는다. 굳이 직접 테스트하지 않아도 내 인생에 그 어떤 플러스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공유되는 그 곳에 올라오는 소음들을, 조용하고 소소한 내 일상과 비교하며 자발적으로 다른 스트레스를 찾고 싶지 않았다. 티나지 않아도 좋으니 내 페이스대로 어제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데 집중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족지향적 가치와의 재융합
한국에서 설날과 추석이 큰 행사이듯이, 유럽 (혹은 대부분의 서양국가라 해도 좋을 것 같다.)에서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연중 행사다. 이 때는 반드시 그에 맞게 집을 장식하고, 음식을 요리하고, 온 가족이 예외없이 부모님댁으로 모여야 한다. 미국영화를 보면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모두 모여 푸짐한 식사를 나눠먹고, 거대하고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서 미리 선물을 주고 받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 모습과 똑같다.
일터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미팅이 있어도 피치못할 가족 관련 사정이 있을때는 참석하지 못해도 으레 이해하는 분위기이고, 퇴근 시간 이후엔 가족과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는다. 회사사람들이 있는 카톡방이 밤 9시 10시에도 울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남편과의 결혼생활, 사회 및 근무 분위기 속에서, 일명 K장녀 & K노예근성을 가진 나도 천천히 변화를 겪었다. 나름 야망있는 커리어우먼인 나 조차도 목숨과 같았던 사회적인 성공과 커리어를 살짝 밀어두고, 내가 사는 궁극적인 목표는 가족임을 상기한다. 내가 갑자기 무직이 되더라도 걱정말고 천천히 다시 하면 된다고 말해줄 사람은 우리 부모님과 가족이고, 그 어떤 가치도 이 것보다 중요할 순 없다. 사실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불과 몇 년 전의 내가 그랬듯, 우린 자주 이 사실을 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 풀은 좁고 발 없는 말은 천리를 간다
내가 실제로 겪은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해외에 한국회사 공장이 지어지면, 다수의 한국인 직원이 유입된다. 이 경우 회사에서 기숙사나 원-투룸 건물을 얻어주는 경우가 보편적이며 그 회사에 다니는 누구나 기숙사가 어디 위치해있는 지 알게 된다. 생활 반경은 말 할 것도 없이, 그 도시를 기준으로 한 시간 내외를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 출근을 했는데, 그닥 친하지도 않은 회사사람이 느닷없이 "주말에 기숙사 앞에 차가 없던데, 놀러갔다 왔나봐? 누구랑 갔어?" 라고 툭 던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주말만 기다렸다가 광장에 맛있는 레스토랑이 있대서 신나게 갔더니 이미 월화수목금을 만난 회사사람들이 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면? 데이트 좀 해보겠다고 일부러 남자친구랑 1시간 이상 걸리는 도시로 나갔는데, 근처에 위치한 협력사 사람들을 마주친다면? (어디어디에 그 회사 뭐시기 과장 왠 금발머리 남자랑 둘이 있던데? 하는 이야기가 광속보다 빨리 돌아 우리 회사 사람들 귀에 들어오게 된다.) 근무하는 도시가 작으면 작을 수록 루머가 퍼지는 속도는 가속되는 건 덤이다.
이런 일들을 수 년 꾸준히 겪다보면 결국 노이로제가 온다. 원하든 원치않든 내 사생활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고, 내겐 너무도 소중한 작은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겐 밥먹고 이쑤시며 하는 가십거리가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쌓은 짬(?)들이 모여, 업무목적 이외에 다른 인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거나, 한국인 친목모임 혹은 종교활동에도 다니지 않는 지금의 나 2.0 버전을 만든 것이다. 아,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한 몫 할 것이다.
지금은 미국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럴 일은 더 적어졌다. 그렇다고 성격이 내성적이거나 사람들 만나는 걸 꺼려하는 편도 아니다. 막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회사 미팅에 참여할 땐 아주 외향적이고 말도 곧 잘 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건 후천적으로 형성된 행동양상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은 훨씬 큰 도시로 이사한 지 5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서 숲과 강으로 갈 수 있는 외곽에 집을 얻어 조용히 살고 있다. 은둔생활 덕에 사생활은 오롯이 내 것이 되었고, 노이로제도 깨끗하게 치유되었다.
누구나 여러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 법이지만, 조금 더 나 다운 얼굴은 확실히 이 쪽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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