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외노자로서,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먹거리가 뭔지 궁금할 땐 새로 올라오는 먹방 포스팅을 참고한다. 편의점 신상, 새로 출시된 치킨, 요즘 뜨는 카페의 구움과자 등 자극적인 디스플레이와 적나라한 먹는 소리를 보고 들으며 모니터 앞에 앉아 군침만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인 남편은 먹방 보는 날 보며 도대체 남 먹는 걸 왜 그렇게 집중해서 보는 거냐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쳇, 니가 엽떡, 허니콤보, 황금올리브, 순대 맛을 알아?

 

 

알지도 못하는게 까불어!

 

 

 

그 중에 한창 내가 꽂혀있던 먹방이 있었는데, 바로 소금빵이다. 이미 버터가 들어간 부드러운 빵 도우에, 버터를 숭덩숭덩 썰어넣은 뒤 돌돌 말아 소금을 예쁘게 뿌려 보기좋게 구운, 일본에서 왔다는 바로 그 소금빵.

 

유럽에서 빵은 주식이니까 값이 워낙 저렴하기도 하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갓 구워낸 신선한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냥 훌쩍 차타고 베이커리에 다녀오는 게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효율이 좋다. 다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빵"이란 유럽인들이 밥으로 먹는 식사빵이기 때문에 버터나 설탕, 계란이 잔뜩 들어간 (내가 좋아하는) 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런 이유로 내가 사는 도시에는 한국빵집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폴란드의 베이커리에선 소금빵 사촌 정도 되는 빵도 찾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홈베이킹을 해야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널널한 주말 시간이 되어, 묵혀둔 스탠드믹서를 꺼냈다. 레시피는 유튜버 DuCook 듀쿡 님 것을 따라했고, 결과물은 완벽했다.

펄소금이 없어서 일반소금을 버터와 함께 롤링했다.

 

 

 

오븐에서 트레이를 막 꺼냈을 때, 소금빵의 바닥에서 아직도 지글거리는 버터의 향은 그 어떤 니치향수보다 향기로웠다. 호들갑을 떨며 남편에게 뜨거울 때 하나 먹어야 한다고 접시 가져오라며 발을 동동 굴리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뜨거운 빵을 바로 먹으면 안 돼, 건강에 안 좋아. 완전히 식혀서 먹자.

 

 

오븐에서 막 꺼낸 갓 구운 빵을 맛볼 수 있는 특권이란, 1차, 휴지, 2차 발효에 걸리는 인고의 시간과 향긋한 냄새가 온 집에 퍼지는 구움시간을 침 흘리며 버텨낸 승자에게만 주어지는 약 30분 간의 트로피같은 것이다. 그걸 그냥 날려버리고 일부러 식혀서 먹자니?

 

남편 말이, 어렸을 때 부터 어머니께서 집에서 빵이나 케이크를 구우면 반드시 완전히 식힌 뒤 먹어야한다고 말씀하셨단다. 뜨거운 빵을 바로 먹으면 배가 아플 수도 있다고. 우리가 손톱은 밤에 깎지 말라는 부모님 말씀을 의심없이 흡수하듯, 딱히 과학적으로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자기 한평생 갓 구운 빵은 하룻밤을 꼬박 묵혔다가 다음 날 아침에 먹곤 했다는 것이다.

 

음, 정말 좋은 정보구나! 일단 나는 안 먹곤 못 배기겠으니 넌 식혀서 먹어.

 

 

아직 김이 솔솔나는 바삭짭짤고소한 소금빵을 베어물며, 아, 이게 이런 맛이구나 감탄하던 중 괜히 남편이 한 말이 마음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 고소한 버터향에 저항하면서, 정말 자신은 먹지 않고 뜨거운 빵을 불어먹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진짜 이거 먹으면 안되는건가? 지금 자기만 살겠다는건가? 하는 생각이 미칠 때 쯤, 왜 오븐에서 갓 나온 뜨거운 빵을 먹으면 안되는지 과학적으로 이해해야지만 이 답답함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관련 포스팅을 구글링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영어로 다양한 논의가 이미 있었다. 빵을 주식으로 먹는 사람들이니 똑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있었던거겠지. 정말 다양한 포스팅, 블로그 등을 확인했는데 뜨거운 빵에 손, 혀, 입천장이 데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내용 이외에 논리적인 해석을 찾기가 꽤 어려웠다. 그러던 중, 눈을 끄는 내용을 발견했다.

 

 

 

The objection to hot bread is that as a rule it contains more moisture, and is therefore much more doughy. Its particles do not separate so readily when put in the mouth. For this reason there is a tendency, almost universal, to swallow such bread in sticky lumps, and of course the particles do not separate easily when they reach the stomach. This causes them to be retained in the stomach so long that fermentation is set up.

 

If bread not made with yeast is sufficiently well baked, there can be no objection to it merely because it is hot; but in yeast bread, unless very thoroughly baked, the ferment does not leave the loaf until six or eight hours after baking.

 

뜨거운 빵을 먹으면 안된다는 반대의견은 일반적으로 갓 구운 빵이 수분을 더 포함하여 아직 반죽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빵을 입에 넣고 씹으면 쉽게 분쇄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빵 조각을 끈적거리는 덩어리로 삼키게 되며, 이 덩어리가 위에 도달했을 때 소화가 어렵다. 이 경우, 발효(분해)가 시작될 때까지 위장에 오래 남게 된다.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은 빵이 충분히 구워졌다면 단지 뜨겁기 때문에 먹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스트를 쓴 발효빵의 경우, 이를 아주 완전히 굽지 않는 한 6~8시간이 지나야만 발효물이 빵 밖으로 나오게 된다.

 

http://www.davidwalbert.com/dw/2013/01/03/the-dangers-of-eating-hot-bread/

 

The dangers of eating hot bread

One of the perks of baking bread at home — maybe half the point of baking bread at home — is the privilege of hacking off the crust while it’s still hot, slathering it with butter, and eating…

www.davidwalbert.com

 

 

 

역시 어른들의 말씀엔 딱히 발효물이나 수분 함유 등 다소 복잡한 용어들을 뛰어넘는, 매일의 생활에서 얻은 연륜과 지혜가 있는 법이다. 실제로 뜨거운 빵을 쭉 찢으면 수분이 김과 함께 확 하고 날아가는 걸 볼 수 있으니까. 이 외에도, 혹자는 빵이 식으면서 구조가 안정화되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가 지난 빵의 맛이 더 뛰어나다는 의견도 있었으니 참고 바란다.

 

난 이미 뜨거운 소금빵을 두 개나 먹었기 때문에 틀렸다. 오늘 밤엔 소화불량을 각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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