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고 중국어, 점심 먹고 중국어, 저녁 먹고 두말 필요없이 다시 중국어 공부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과 두 사촌은 베이징 육도구에 있는, 층고가 아주 높은 아파트에 살았다. 층고가 어찌나 높던지 천장 구석에 생긴 거미줄을 없앨 수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집에 오래 있어도 갑갑하지 않아 참 좋았다. 그때의 영향인지, 난 여전히 천장이 높은 유럽집을 좋아한다.
첫 해외 생활이니, 모든것이 그저 새롭고 신기했다.
아파트 뒤쪽엔 작은 상가건물이 있었는데, 아침마다 돼지고기와 채소속이 든 달큰한 빠오즈 만두 찌는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길거리엔 신장에서 온 아가씨들이 담요를 깔아놓고 손수 만든 액세서리를 팔았고, 몇 백그람인가 사면 꼭 조금씩 더 얹어주던 유명한 오도구 대추빵도, 하나 먹으면 속이 든든한 찌엔삥 맛도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그땐 다들 현금을 썼는데, 요즘은 거지들도 큐알코드로 구걸하는 시대라 하니 시간 흘러가는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공부는 순조로웠다. 북경어언대학교 우리 반엔 네덜란드, 러시아,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학생들이 함께 모여 공부했다. 그 중에는 부모님 중 한 쪽이 중국인이라 뿌리를 찾아 왔다는 혼혈인도 있었다. 학교수업을 성실히 듣는 건 물론, 동생 수학공부를 봐주던 중국인 과외선생님 천하오에게 영어 스피킹을 봐 줄 테니, 나와 중국어회화를 연습하자고 졸랐다. 그는 외지사람으로, 머리가 좋아 북경으로 상경하여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했다.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까지 중국 안에 흠뻑 빠져있으니, 중국어 실력은 날로 늘어갔다.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녔다. 만리장성, 이화원, 자금성 등 엄청난 스케일과 다채로운 역사를 자랑하는 장소도 충분히 그 매력이 있지만, 내몽고에서 본 고비사막 밤하늘의 별은 평생 가져갈 몇 안되는 기억으로 남았다. 하늘을 커튼처럼 걷은 뒤 탁탁 털면 그 큰 별들이 그대로 쏟아져내려, 하나 하나 주워담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몽골식 유르타에서 자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유럽 에어비앤비를 구경하다보면 경치 좋은 산 중턱에 a la 유르타를 짓고 하루 숙박비를 20만원씩 받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그때마다 내몽고를 생각했다.
그렇게 10개월 정도를 공부한 후, 나는 목표했던 대로 HSK 5급을 취득했고 중국어 회화가 편해졌다. 뜻한 바를 이루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마냥 쉴 수는 없었다. 졸업 및 취업이란 허들이 목전에 버티고 있었으니 다시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취업이라는 고난길을 상상하지 못했고, 중국에서 이룬 작은 성취에 취해 헤롱거리고 있을 때였다.
(4)에서 계속...
'유럽에서 먹고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운 겨울에 잘 어울리는 헝가리안 굴라쉬 (3) | 2024.02.08 |
---|---|
누가 뭐래도 난 행복한 은둔자 (1) | 2024.02.07 |
폴란드 남자랑 연애/결혼 10년, 국제커플이 함께 사는 법 (0) | 2024.01.19 |
오븐에서 갓 나온 뜨거운 빵을 먹지 않는 폴란드인 남편, 도대체 왜? (0) | 2024.01.15 |
(2) 다국어 가능자의 인생 이야기 : 외국어 2개 더, 그렇게 5개 (1) | 2024.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