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에는 자동차 부품 공장이 많다. 체코에는 현대자동차가, 슬로바키아에는 기아자동차가 공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납품하는 협력체들이 대거 진출해있는 사유다. 유럽에서 자동차 부품 회사에 근무한 지 5년, 정말 이런 고생 저런 고생, 젊음이 물어다주는 사서하는 고생까지 안해본 고생 없이 참 열심히 일했다. 2019년, 이제 슬슬 다른 분야로의 이직을 생각하던 차였다.

유럽에 슬슬 EV 트렌드가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2030년까지 전기차 생산 100%의 전환도 공표되었다 (지금은 이런 저런 사유로 5년 정도 밀려나긴 했지만) 전기차 배터리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차저차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굴지의 회사에 입사했고, 구매담당자로 약 1년 간 일하던 참이었다. 여러 협력업체를 관리하고, 생산계획에 맞춰 필요한 자재를  입고시켰으며 알맞는 재고관리와 구매관리를 몫으로 하는 자리였다.

 

당시 내가 관리하던 협력사들 중에는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셀과 플레이트를 결합하면서 열을 외부로 방출하는 우레탄 접착제를 생산하는 미국 회사가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회사는 글로벌 기업이란 명망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 업무문화는 여전히 철저하게 한국식이라 비즈니스에 대한 베이스라인이 다른 미국 협력업체를 관리하기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잡지 않은 상태에서는 생산라인에 변수가 많기 때문에 자재를 알맞게 준비하는 일이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협력업체에서 조금 더 탄력적으로 대응해주길 바라는 내 마음을 몰라줘도 너무 몰라주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라인이 끊기는 일은 곧 내 목숨이 끊기는 것 처럼 해야하는데, 그 일이 목전에 닥치고 말았다. 불이 나게 전화를 하는데 연결이 되지 않을 뿐더러, 메일로 회신 받은 영업담당자의 말은 "너희 집 라인은 모르겠고 우리는 할 수 있는게 없어, 나 하루에 메일 200통씩 받거든, 많이 바빠, 쏘리~"

라인과 함께 메일을 읽어 내려가는 내 사고회로도 멈췄고, 파격적인 컴플레인 메일을 준비했다. 분노의 영어메일에, 볼드를 주고, 영업사원이 내게 보낸 저 문장 크기는 크기를 키우고 빨간색으로. 아차차, CC에는 상사도 들어가야지. 한국 영업담당자 분 성함이 뭐였더라, 시니어 매니지먼트 다이렉터도 빼먹을 수 없지.

 

귀사 영업담당자분 말이, 하루에 200통 넘게 메일 받고 있어서
제 메일의 경중을 구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업무의 우선도 관리도 되지 않고, 오버캐파로 고통받고 있는 것 같은데
직원의 bandwidth 관리는 귀사의 책임이 아닐까요?

아주 순화해서 쓰자면 이렇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내가 협력하면서 느꼈던 다양한 문제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숫자를 매겨 전달했고,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이 미국회사에 근무한 지 4년이 되었다.

 

(2)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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