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납득하기 위해 머리를 미친 듯이 굴리고 있는데, 어느 덧 게이트에 도착하고 말았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자는 듯 눈빛을 남기곤 미팅 고마웠다며 두 매니저는 자리를 떴다.

 

여차저차 그 날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당시 함께 살고있던 남자친구 (현 남편)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며 신나서 설명을 했더니 굉장한 일 아니냐며 함께 기뻐해 주었다. 사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별 진척 없이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 일은 자연스럽게 잊혀져 갔다.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의 오후, 법인장 비서가 내 자리로 찾아와, 법인장님이 면담을 하고싶어 한다고 했다. 꽤 젊은 나이임에도 그룹 임원이 된 어마어마한 능력자라더라, 한국 본사에서 인정받는 인물이라 이번 공장으로 전략적으로 발령나온 사람이라더라 등 소문이 자자한 그 높은 분이 나를 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꽤나 긴장하며 법인장실로 갔더니, 앉으라며 하는 말이 경영관리팀 비서실에서 자기를 도와 같이 일하지 않겠냐고 묻는 것이다. 우리 팀 담당을 불러다가 구매팀에서 누가 일을 제일 잘하냐고 물으니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나라 언어를 하냐고 물으니 곧잘 한다고 했단다. 자기가 이 공장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를 잘 이끌어 나가고 싶은데, 영어로만 소통하기엔 언어 장벽문제도 크고 경력과 업무 센스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여 제안하는 것이라고. 자긴 누구에게 이런 제안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이게 어떤 기회인지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도 같았다. 혹시 내가 똑똑하게 잘 따라가기만 하면, 굴지의 글로벌 그룹 안에서 라인이랄까 하는 것을 잡게 될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에 대응하는 값을 치러야겠지만, 실로 누군가는 엄청난 기회라고 평가할 수도 있었다. 일을 선택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하는 사항들, 예를 들면,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가?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가? 일을 할 때 즐거운가? 등을 제쳐두고 그저 치기 어리고 세속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려 할 때쯤, 마음 깊은 곳에서 내게 말했다.

 

 

근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내 욕심, 경력, 자기개발보다는 높으신 분의 사이클에 모든 걸 맞춰야 할 것이다. 이직 전에도 이 나라 말을 한다는 이유로 퇴근 후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업무 이외의 자잘한 통역, 번역은 물론, 회사 법률 소송도 내가 했었던 기억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근데 변호사랑 일하는 건 정말 재미있긴 했다). 싫은 티는 못냈지만, 이제 그런건 그만하고 싶었기에 이직했던 사유도 있었다. 이 회사에는 통역팀을 별도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도 똑같은 말을 했다. 니가 잘 하는 게 좋아하는 거랑 같지 않을 수도 있어. 니가 좋아하고 즐거운 일을 해야해. 그렇지 않으면 얼마 가지 못해 나가 떨어지고 말거야. 사실 너도 이미 알고있지?

 

 

 

결론은 나왔다.

 

 

(4)에서 계속...

 

 

 

구글링해보니 사업부는 다르지만, 23년에 동 그룹 전무로 승진을 하셨다는 뉴스가 뜬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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